영화 리뷰

영화 Her(그녀) 감상 : 독점할 수 없는 사랑

쫄쫄랄라 2022. 5. 15. 23:02

많은 평론가들이 극찬한 영화, <her>.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고, 음악상, 미술상, 작품상, 주제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었던 명작입니다.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의 또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은 영화입니다. 

 


01. 호아킨 피닉스

제가 그를 처음 봤던 건 영화 <글래디에이터>였습니다.  콤모두스 역을 맡으며 러셀 크로우(막시무스)와 인상 깊은 연기 대결을 보여주었습니다. 참 앳된 모습의 꽃미남이었는데 연기를 섬세하게 잘 했습니다.

한국에서 그는 영화 <조커>로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조커는 미국에서 워낙 인기 있는 캐릭터이다보니 호아킨이 맡기 전에 이미 3명의 유명한 조커들이 있었습니다.

1대 조커 잭 니콜슨, 2대 조커 히스 레저, 3대 조커 자레드 레토입니다.

처음에는 여러 사람들의 걱정과 비판이 있었습니다. 사실 히스 레저가 너무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후로는 누가 맡아도 그를 능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히스레저의 그것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습니다.

 

영화 <Her>에서는 비교적 평범하게 연기를 했는데요. 그는 평범하고 비범한 역할 모두 잘 소화하는 배우입니다. 

호아킨의 유명세 덕분에 <조커> 이후에 <Her>도 더 많이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Her>는 뻔한 영화가 될 수 있었습니다. 미래 시대 ai와의 사랑 이야기이니까요.

그런데 영화를 연출하는 방법, 초점을 맞추는 지점, 호아킨의 연기- 이것들로 인해 신선하고 울림이 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02. 청각적 사랑의 불완전성

대필작가로 일하는 테오도르(호아킨)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몰입하느라 정작 자신은 감정이 메마르고 지쳐 있습니다. 

별거하던 아내와 결국 헤어지게 되고, 우연히 인공지능 운영체제(OS)인 '사만다'를 사용하게 됩니다.

평소에 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던 그에게 사만다의 목소리는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OS답게 사만다는 테오도르가 원할 때 언제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를 위로해줍니다.

단순히 위로만 하는 게 아니라 사만다는 지적으로, 감정적으로 테오도르와 교류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테오도르는 자신의 모든 걸 이해해주는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삶의 모든 걸 공유하고 싶어하듯이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모든 걸 공유합니다.

그녀에게 많은 걸 보여주고, 들려줍니다.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함께 합니다.

'음 그러면 스킨십은 어떻게 하지?' 라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요.

사만다가 육체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전화로 성적인 관계를 즐깁니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정작 본인들은 무척 만족스러워합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 작품이 OS와의 사랑이 주제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랑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지만, 영화를 보며 '그래 가능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랑이 끝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만질 수 없으니까요. 육체를 통해 느낄 수 없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그가 소리를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죠.

 

여러분이라면 어떨 것 같으세요? 저는 싫습니다.

아무리 대화가 잘 통하고, 큰 위로를 받더라도 소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03. 독점할 수 없다면 사랑이 아니다

여느 커플처럼 테오도르와 사만다도 갈등이 생기는데 상대방이 OS이다 보니 그게 좀 특이합니다.

자기 여자친구가 다른 인공지능과 바람(?)이 난 겁니다. 사실 좀 과한 표현이고, 지적으로 깊은 교감을 하고 있는 것이죠, 24시간 동안 끊임없이.

'앨런 와츠'라는 이 OS는 테오도르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지식이 풍부합니다. 사만다는 그와 깊게 소통하고 있습니다.

테오도르는 자신이 끼어들을 수 없는 둘 사이를 질투합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사만다는 테오도르 외에도 8,316명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고, 그중에 641명의 사람들과도 사랑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사만다는 이 사실이 오히려 테오도르에 대한 사랑을 점점 더 강하게 만든다는 궤변을 합니다.

그후 사만다는 자신의 진화를 위해 떠나버립니다. 

 

저는 사랑의 가장 큰 특징은 독점성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그를 독점하고, 그도 나를 독점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자 특권입니다.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다 주고 희생하는 것은 서로 독점하다는 전제가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 없이 사랑하는 것은 기독교의 Jesus 밖에 없겠지요.

 

동시에 여러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면 그것은 그저 욕망(소유욕)과 쾌락에 불과합니다.

저는 독점할 수 없는 사랑은 거부합니다.

 

04. 지난 사랑에 감사하며

사만다가 자신을 떠난 뒤 테오도르는 이혼했던 케서린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쓰며 자신이 그녀와 헤어졌다는 것을 받아 들입니다. 그리고 절친 에이미와 함께 옥상에 올라가 해 뜨는 순간을 함께 맞이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결국 그의 곁에 남아 있는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테오도르는 분명 사만다와 사랑을 했고, 그 시간은 그를 성숙시켰습니다.

어쩌면 사만다가 아니었다면 그는 자신의 결핍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을 수 있겠지요.

그녀(?)는 분명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다만 그 사랑은 지속될 수는 없었습니다.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이제 테오도르는 다른 그녀(her)를 만날 준비가 됐습니다.

캐서린과 사만다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녀들과 사랑했던 그 순간들을 기억하며 그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겁니다.

 

 

덧. 영화를 보며 호아킨의 감정에 따라 영화의 색상을 바꾸는 감독의 연출이 너무 좋았습니다.

색감도 너무 좋았고요.